지난 영화를 꽤나 열심히 수집해 보던 시절이 있었다.
PMP를 구매하고 싶다는 충동은 이렇게 영화에서 시작됐는데,
마침 거기에 사회조사분석사니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등등 동영상 강좌로 공부도 해야겠다는 욕구가
구매욕구를 한층 더 부채질했다.
그러던 2005년 1월 드디어 아이스테이션 V43 네비(20G)를 질러버렸다.
왕복 출퇴근길 하루 한 편의 영화를 보던 만 2년 이상의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 V43에는 가족들 중 일부만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다.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 지상파 DMB 수신기까지 구매해 심취해 있던 2007년 봄,
술에 취한 귀갓길에 택시를 탔다가 가방을 통째로 분실한 것..
하필 아주 못된 놈의 택시 기사를 만나 분실한 물건을 하나도 되찾지 못할 지경에 처했다.
택시 기사의 내연녀로부터 가방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모종의 거래를 제안받고는
되찾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마저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러나, 또 한가지 문제는 워낙 아침 저녁으로 끼고 다니던 기기라,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분실 사실을 은폐키위해 PMP를 다시 구입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미 버전업된 T43이 출시됐기 때문에 기존의 V43이 아닌 T43 네비(60G)를 구입하는
대범함을 보인다.ㅎㅎ
분한 마음을 간신히 떨져내고 T43에 적응하며 지낸지 수개월..
어느날, 아이스테이션 강북서비스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V43 한 대가 AS 접수됐는데 기기의 시리얼을 조회해보니 분실신고된 기기인지라
곧장 내게 연락을 취했다는구만
이런 우여곡절 끝에 되찾게된 V43은 잠시 동생의 차지가 됐다가 지금은 깜깜한 서랍안에 모셔져 있다.
언제부턴가 강좌는 커녕 영화 보기도 질리고..
DMB 기능마저 휴대폰에 자리를 양보하기에 이르니 PMP는 거의 무용지물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넥서스원을 구입한 이후 스마트한 세상에 푹 빠져지내노라니 PMP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랬던 PMP가 다시 빛을 보게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기기인 넥서스원 때문이었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자 승부를 떠나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계는 시청해야했고,
넥원으로는 DMB를 시청할 수 없으니 당연히 PMP에 손을 뻗은 것..
간만에 집어든 PMP는 어찌나 천대를 받았던지 이어폰 접촉부위가 불량인 상태였고
호사스런 AS센터의 손길을 거친 후에야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퇴근길 버스안에서 무릎에 놓인 가방 위에 T43과 넥원을 나란히 놓고 포스트시즌을 감상하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기왕이면 한국시리즈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기대했건만 4전 전승으로 싱겁게 끝나버려
부활한 PMP는 또다시 용도를 다했다.
내년 프로야구 시즌이 재개되기까지는 아마도 서랍 속이 제자리가 될 듯하다.
예전같으면 이런 T43의 처지에 측은지심을 느꼈을 법도 한데, 그래서 영화라도 한편 봐줄 법도 한데,
도무지 측은하지가 않다.
강을 건너면 배는 버려야지. 고맙다고 산으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버려지고 나니, 체화가 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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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43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을 시, 양도 의향 있다. T43 말고..
요청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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