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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일 금요일

그녀와 나와의 시놉스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한 인간은 소화기관을 가진 한덩어리의 뉴런다발이라 가정해볼 수 있다.

신경조직의 말단은 감각을 채득하기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고 여기서 얻어진 자극은 뉴런과 뉴런사이의 시놉스라는 작은 틈을 거쳐 신경중추로 전달됐다가 다시 말단으로 내려간다.

타인과 나 사이의 소통이라는 행위 역시 이런 뉴런다발과 뉴런다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각전달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개체와 개체간의 거리는 뉴런과 뉴런 사이를 잇는 거대한 시놉스에 비유된다.

그녀와 나 사이의 시놉스가 특정 화학반응으로 채워져감을 느낀다.

개체내 시놉스에서 일어나는 감각 전달과정이 나트륨과 칼륨의 균형있는 화학반응에 의한다면, 그녀와 나 사이의 시놉스는

각기 형성해온 개체의 특성들과 사회적 관계들이 균형있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 유쾌한 놀라움과 흥미로운 감흥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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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말라"

세상이 어수선하니, 긴글을 읽기가 쉽지 않다.
긴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달간 대부분의 사회이슈가 소용돌이의 정점을 향해 집약되다보니,
출퇴근 시간의 뉴스와 트윗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필수정보를 섭렵가능했다.
반면, 나머지 시간엔 이미 본 정보들이 확산되는 시간에 불과했다.

공자께서 "위태로운 나라에 가지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이것이지 않나 싶다.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지도자가 인을 깊이있게 사려하지 않으니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위태로운 나라에서는 구성원들이 생존에 목을 매느라 예를 따르지 않으니 또한 사회가 어지러워진다.

악순환이다.

천재가 아니라면 세상을 구할 방안을 고민해 내놓지는 못할테고,
그나마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힘든 상황에 처한 주변사람을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타인의 슬픔에 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거울뉴런의 기능이란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거울뉴런의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보다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전혀 유니크한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빨리 슬픔을 해석하고 슬픔의 지속시간을 예측하고, 그 사람의 슬픔에 동조하는 주위 사람들, 혹은 대중의 다음 행동을 전망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공명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책을 읽다가 문득 페이지의 오른쪽 상단을 보고
시계표시가 없음에 의아했다. 
#스마트폰중독 

배터리잔량 표시는 남은 페이지수를 의미할까?

2011년 9월 28일 수요일

익어가는 가을 - 이해인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비만인류의 미래

국제적십자사연맹(IFRC)는 21일 전세계 비만 인구의 수가 영양실조 등으로 고통받는 기아 인구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진화 초기 인류의 대부분이 기아에 허덕이던 시절,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체내의 잉여 영양소를 비축하도록 하는 진화론적 선택을 한다.
수렵이나 채집활동을 통해 섭식을 한후 신진대사에 필요한 영양소는 즉시 산화하지만, 남은 영양소는 배출하지 않고 체내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뱃살이다. 선조들을 생존시켜줬던 이 뱃살기능은, 비만과 과체중에 시달리지는 않더라도 운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잉여영양소를 산화시켜야만 적정체중을 유지하도록 현대의 인류에게 멍에를 씌운 것이다.

(cf. 이건 좀 많이 불만스럽다. 어떻게 라면 한개 먹고, 2시간을 뛰어야 한단 말인가!)

비만인구(20%)가 기아인구(15%)의 수를 초과했다는 저 뉴스는 출근길에서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게했다.

최소 20%, 많게는 85%의 인류가 잉여영양소를 저장하는 생물학적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인류는 또한번 진화론적 선택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 첫번째이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세계에는 기아인류와 비만인류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또다른 진화의 단계를 맞이할런지도 모른다.
즉, 잉여영양소를 체내에 저장하는 기아인류와 그렇지 않은 비만인류는 더이상 동종의 인류로 분류할 수 없게될런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체가 아닌 종의 존속을 위해 기능하는 이기적 유전자가 이를 용납할런지 역시 또 모를 일이다.

만약, 이기적 유전자가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의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비만인류는 지속적으로 뚱뚱한 인류로 남게될 것이고, 기아인류는 지속적으로 죽어갈 것이다.

결국은 기아인류는 다 죽고, 비만인류 중 운동을 통해 살아남은 인류만을 대상으로 뱃살기능을 제거하는 진화가 이루어질 것이란 얘기다.

이기적 유전자의 선택이 어떠할런지 장시간 관찰할 수밖에 없는 인류의 입장에서는 생물학적 진화의 방향을 예측하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인류는 신속히 정신적 진화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출근길에서의 두번째 생각이다.

비만인류의 일반의지만이 인류의 정신적 진화를 이끌 수 있다. 잉여영양소만큼 적게 먹고, 동일만 만큼을 기아인류에게 제공해 그들을 기아상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누가 또 알겠는가,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가 이런 인류의 노력을 굽어살피시어 뱃살기능을 제거해줄런지..
과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당지지도 변화추이는 horizontal 데칼코마니였다. 
마치, 호수에 비친 산의 능선처럼.
반면, 지난 2년간 정당지지도 변화추이는 한나라당과 무당파간의 데칼코마니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등락을 같이하는 상수였다.

2011년 9월 7일 수요일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주둥이가 비뚤어진다던데.. 
우리집 모기들은 비뚤어진 입으로 잘도 문다.

주둥이는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던 옛사람들의 격언이 떠오른다.

모기만도 못한 인간들... 

마포구 용강동 산 ~번지

최근들어 우리 어머니가 부쩍 자주 말씀하시는 
어릴적 살던 동네 추억담에는 과거의 한강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포구 용강동 산 ~번지'로 시작하는 추억담 속에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한강가로 나가 
해가 지도록 수영을 하던 삼촌들도 있고,

노량진 나룻터에 새우젓을 싣고 배가 들어오면 
주변에서 놀다가 새우젓을 집어먹으러 몰려들었다는 꼬마들도 있고, 

아침바다 뱃삵받아 나룻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장마철이면 학교에 가지 못해 
강가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어린 시절 어머니도 있다. 

오세훈과 그 추종자들이 말한 한강의 르네상스는 
어떤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싶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2011년 9월 1일 목요일

중앙대 가정교육과가 사라진단다.
대학 들어와 첫 미팅을 가교과와 했었다... 

나의 후배들은 정치국제학과라는 이상야릇한 학과를 다니고, 
그마저도 가정교육과와 미팅할 기회마저 잃었다

......

2011년 8월 30일 화요일

컨설팅은 본래 의뢰받은 사안에 대해서만 자신의 지혜를 대가성으로 공급한다. 
의뢰받지 않고 이래라저래라 떠드는 낭설은 스스로를 위한 광고행위일 뿐이다.
타당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개는 자극적인 광고문안처럼 듣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의뢰받지 않은 사안을 대하는 컨설턴트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인가? 
가장 좋은 것은 입을 다무는 것. 
차선은, 싸구려 예측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ex) 나의 문제점은, (젝웰치님에 따르면) 두번 얘기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베버상수를 현 시대상에 적용해 설명한 참신한 글..
"70년대에는 한 노동자의 분신만으로 온 나라가 경악하고 학생과 지식인들이 우르르 청계천으로 몰려가 싸웠다. 
지금 각지에서 수백 일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은 절절한 연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끼리끼리의 품앗이 투쟁도 버거운 듯하다."

http://networker.jinbo.net/zine/view.php?board=networker_4&id=1358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네이버 없이 살아가기 시작.. 
회원탈퇴 완료
단체회원 엮여있는 곳이 두군데나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후회는 없다

노무현을 지워서가 아니다. 
역사와 사실을 왜곡해서이다 

"네이버, 노무현을 지우다" 
http://j.mp/qiY8KW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아짐찮다

오전 회의에서 최근 정국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오세훈의 전략 실패와 진정성 부재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얼마전 읽었던 진정성에 대한 글이 문득 떠올라, 포스팅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일독을 권함 

"아짐찮다는 말은 늘 내게 어떤 머뭇거림을 연상시킨다. '아짐찮게 뭘 이런 걸 가져오셨소.' 미안함과 고마움 가운데 어느 쪽 감정에 무게를 두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하나의 낱말 위에서조차 서성거렸던 사람들의 진정성은 바로 그 머뭇거림에 존재한다" 

"사람의 진정성이란 단 한순간 언뜻 비치는 신념을 가리키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진심이라는 낱말을 흘릴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그것들을 주워들어 조합한 뒤에야 완성할 수 있는 문장과 같다" 

원문 링크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36528 

2011년 7월 27일 수요일

Prime number

퇴근길에 차량넘버 7207이 문득 눈에 띄기에, 
과거에 다니던 회사 전화번호가 떠올라 "7207 7208 ..." 이라고 트윗에 읇조렸다
아마 그저께쯤 일이었나?

오늘 아침 트윗 멘션에 이런 멘션이 있는게 아닌가..

"7207 is the 920th prime number. RT @thehyan: 7207 7208 ..."

멘션한 이를 보니, PNbot 이란다. 아래는 프로필..
---------------------------------------------
Prime Number Bot
@PNbot view full profile →
JAPAN
Prime number counter. Reply with primality test.
http://www.google.com/crisisresponse/japanquake2011.html
---------------------------------------------------------

우리말로 '소수'(素數)라고 하는 Prime number는, 
1보다 큰 자연수로서 1과 그 수 자체 외의 약수를 가지지 않는 수.
예를 들면 2, 3, 5, 7, 11 등을 일컫는다.
(소수에 관한 더 흥미로운 설명은 http://www.scienceall.com/dictionary/dictionary.sca?todo=scienceTermsView&classid=&articleid=252588&bbsid=619&popissue= 링크 참조)

7207 만큼 큰 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37을 유독 사랑하고, 
17과 31 을 사랑하고, 그 외의 모든 소수들을 또한 사랑한다.

소수들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도도한 매력이 있다.

블랙수트치마와 흰색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커리어우먼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침대 발치에 몸을 웅크린, 자폐증상을 앓는 눈이 큰 소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앙칼진 교성을 내뱉는 고양이의 수염이 떠오를 때도 있고,
파카글라스에 담긴 얼음 띄운 드라이진이 떠올라 입맛을 다실 때도 있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감명깊게 기억하는 이유도, 
야구 이야기가 소재에 포함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수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유독 수학에 취약했음에도 소수에 대한 이런 사랑은
중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이자 수학선생님이셨던
이창대 선생님께서 처음 이 소수의 존재를 알려주셨던 그 수업시간,
짙은 녹색칠판과 칠판지우개의 줄무늬 홈을 따라 남겨진 하얀 분필가루 자욱

이창대 선생님과 내가 함께 사랑한, 물리학을 전공했다던 김종애 과학선생님과 
그녀의 얇상한 회초리
과학캠프 마지막날 아침 식사로 나온 카레라이스를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던 
그녀의 하얀 손가락과 얇실한 입술의 움직임까지를 단박에 떠오르게 한다. 

Prime Number Bot 이 우연스럽게 불러일으킨 소수에 대한 추억과 
그 수들의 영속적인 배열을 닮은 영원성의 가치가 
2011년 여름, 매서운 빗줄기에 상처 입은 도시의 아픔을 잠시 잊고 
13세 소년 시절의 기억을 되새겨준다. 

2011년 7월 26일 화요일

세~탁~





2000년 9월 초 어느날

이날은 사춘기 시절부터 키워오던 베를린 횡단의 꿈을 이룬 날로 기억된다.

장벽이 붕괴된 직후, 당시 기술 샘께서 섭시간에 장벽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몇개의 돌덩이를 아이들에게 돌려가며 관람(?)을 시켜줬었다..
붉은색, 푸른색 시멘트가 살짝살짝 묻어있는, 붉은 벽돌에서 떨어져나왔을 법한 돌 조각이 내게로 전달돼 오자, 난 책상위 철제나사 부분에 슬며시 (하지만 힘껏) 돌 조각을 짓이겨 새끼손톱만한 돌맹이 조각과 시멘트 낱알들을 취했다~
(당시의 샘께는 두고두고 죄송스런) 장난끼에서였지만 장벽의 가치와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함의를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한 철없던 당시의 나에겐 장벽 전체와 맞먹을만한 위대한 부스러기였다..

2000년의 9월 그날은 그런 장벽이 붕괴된지 만 10년 하고도 10개월째 되던 때였다.

베를린 동쪽 끝에서 출발해 분단 독일과 통일 독일의 흔적들을 밟아가며 서쪽을 향하던 나는 서베를린 지역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하천을 지나며 이 퍼포먼스를 목격하게 된다.

(솔직히 하천의 이름이며, 지명은 생각 안난다..) 오래전부터 베를린 시민들의 공동 빨래터였던 이곳은 반세기 동안의 분단으로 제 역할을 못했고 장벽이 붕괴된 이후에는 상하수도 시스템의 발달로 역사속에 묻혀졌다.

사람들의 생활은 물가에 쭈그려 앉아 찬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세제도 없이 검댕이만 떨어내던 그 시절의 빨래방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진화했지만,
찬물, 더운물은 물론이고 세제, 탈수, 건조까지 자동으로 해주는 세탁시스템을 갖추고도 베를린 시민들은 그 옛날 이 곳에서 어울려 빨래를 하던 시절보다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아우성이었다.

이 퍼포먼스는 그 옛날 고단했지만 화합과 소통이 있던 빨래터를 현대식으로 기억해내고자 기획되었다. 아울러 세탁조 속 빨래들이 한데 엉켜 돌아가며 새 것같은 옷들로 재탄생하듯 국제사회가 화합하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메세지도 담고 있다고 했다.

몇일후면 독일 통일 15주년(※2011년 현재 21주년), 여전히 들려오는 아우성과 거침없는 세계화의 진군.. 그리고 나..

사춘기 시절 그 '위대한 부스러기'는 독일제 스탠다드 제도기 셋트내 콤파스 연필심 보관통에 담겨져 지금도 내 방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철없던 나의 소유욕에 관용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 다시 보는 싸이글 2004.10.12 13:14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모든 것을 감수해야 소통이다"

이찬진님의 프로필 사진
이찬진  -  2011. 7. 20.  -  공개
유명한(그리고 제가 보기에 아주 훌륭한신) 어떤 교수님 특강을 들었는데, 커뮤니케이션(소통)은 쌍방이 원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착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뭔가를 아쉽고 간절히 원하는 한 쪽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어떻게 보면 상대를 괴롭혀가면서까지 해서 결론적으로는 양 쪽이 좋아지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소통은 서로 힘들고 괴로운 거라고요.

그 아쉬운 한 쪽은 모든 것을 감수해야지만 소통했다고 할 수 있지, 한 번 띡 해보고서 상대가 호응하지 않아서 안됐다고 비난하고 포기하는 건 진짜 소통이 아니라고도 하셨구요. 요즘 정치권의 그리고 대통령의 소통부재를 생각하면서 들으니 더 실감이 나더군요.(이 글에 대해서 정부나 대통령을 비난하는 댓글은 주제에서 벗어나니 달지 않으셨으면... ^^ 그리고 심하면 제가 삭제할지도. ㅠㅠ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게 소통일테니까요. ^___^)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세가지 방법이자 구성 요소는 설득(persuation), 조작(manipulation - 아마 좋은 의미의 ^_^), 구걸(begging)이라고 하시는 부분에서는 너무나 가슴에 와닿더군요. 특히 조작 부분은 이해가 안되는 분들도 계실텐데 저는 너무나 절절하게 와닿더군요. 그리고 구걸도... ㅠㅠ

제 글이 이해가 잘 안가시는 분을, 위의 글에 들어가는 '커뮤니케이션(소통)'이라는 단어 자리에 여러 분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힘든 커뮤니케이션이었을 '구애(혹은 청혼)'이라는 단어를 넣어 보시면 '확'하고 와닿을실 겁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아해들은 가라... -__- 비암...

2011년 7월 17일 일요일

외할아버지 기일

하루 왠종일 아무 내색 않던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시다가 외할아버지가 보고싶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갑작스런 감정폭발에 나머지 식구들은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내고 나올때까지 어안이 벙벙

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드라마는 이어지고 하루가 간다

2011년 6월 22일 수요일

소녀시대와 스테판 에셀

한국 아이돌 그룹의 프랑스 현지에서의 반향과 『분노하라』의 한국에서의 반향
어느쪽의 반향이 더 클까?
두 사건의 반향의 크기를 측정하고 비교하는 것은 가능한가?

A. 파리에서 한국 아이돌들의 콘서트가 열리고, 파리의 청소년들이 그(녀)들 아이돌그룹에 열광하는 장면이 '한류의 유럽침투'란 제호로 몇주째 국내방송에 소개됐다.
공연 개최를 요구하는 퍼포먼스가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펼쳐졌고,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한국의 아이돌그룹이나 한류 침투를 아직 알지 못하며, 한국이란 나라 역시 아직은 낯설다.

B. 프랑스에서 레지스탕트 출신 고령의 지식인이 출간한 『분노하라』가 순식간에 200만부 이상 팔렸고, 이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
출간 이전부터 일부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고, 출간되자마자 각종 온라인서점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각광을 받고 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저자인 스테판에셀은 물론이고 프랑스혁명의 정신인 자유,평등,박애가 왜 지금의 우리사회에 유의미한지 알지 못한다.

당장에는 A와 B간의 반향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도 어렵고, 닮은 듯 보이지만 별개의 사건으로 여겨지기에 흥미있는 주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서 물어보면 어떨까?
"마케팅의 목적으로 또는 문화적 충격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국내 언론들은 두 사건 모두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대중에게 해석을 제시했다"는 주장에 어느 쪽의 지지자들이 보내는 이의제기가 더 강할까?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의 서문에서 언급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독립된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제이다.
그리고, 저자의 지적처럼 현대 사회는 복잡다양해서 분노의 대상을 간별해내는 것이 그가 레지스탕스와 인권 활동을 했던 시기보다 한층 어렵다.

저자는 꿈에라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한국의 독립된 언론은,
애국심으로 무장한 절대 다수의 나르시스트 국민들에게 한류의 자부심을 불어넣기도 하고,

자국 사회의 후진성을 유럽에 대한 사대주의에 의존해 경멸하고, 조소하기도 한다.
스테판 에셀 옹의 『분노하라』가 일으킨 프랑스혁명 정신의 재조명, 레지스탕스 정신의 부활, 세계인권선언의 모티브에 담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옹호론이 우리나라 -근대화 100년을 겪고도,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정신의 극심한 빈곤의 시간을 살아가는 한국-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11년 4월 29일 금요일

아침바람 찬바람에

"아침바람 찬 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4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조카 한나가
지난 주말 "아빠곰 엄마곰" 노래와 율동을 식구들 앞에서 처음 선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인 엄마의 시범을 응시해가며 시늉을 하는 본인이 쑥스러웠는지
연신 배시시 웃는다.

"삼촌하고 아침바람 찬바람에 해봐"

내친김에 그동안 가르친걸 다 보여줄 요량에 동생이 한나를 부추긴다.
한나가 얼른

"바비야"
(무슨 이유에선지 한나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ㅜ.ㅜ)
하고 달려와서는 내앞에 서서 손을 내민다.

"아침바람 찬 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우리 엄마 계신 곳에
엽서 한장 써주세요

한 장 말고 두 장이요,
두 장 말고 세 장이요"

얼마만인지 모르는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마주쳐가며 한나와 호흡을 맞춰줬다.

꾸물꾸물 빗방울도 오락가락하던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던 소설 속에 나오는 '아침바람 찬바람에' 구절을 읽다가

'어찌 이런 슬픈 노래를 동요랍시고 가르치나몰라'
지청구 부리던 기억이 났다.

갓 세살 조카 한나가 저 노래의 구슬픈 단조가락과
'한장 말고 두장, 두장 말고 세장'
하던 부질없는 소망의 심정을 알게될 때는 언제쯤일까?

뜻모를 노래를 부르면서도 배시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오히려 행복한 때라는 어른들의 생각을
한나는 또 언제 알게될까?


2011년 4월 18일 월요일

농협 사태, 일주일 경과

지진으로 시작해 쓰나미, 원전 사태로 이어진 일본의 대참사를 보는듯, 농협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못보이고 지속되고 있다.  
이런 류의 사태들이 갖는 공통점은, 최초에 문제가 발생한 때에 위기상황이 부분적으로 파악되고, 보고체계의 상위단계로 올라갈수록 최소화되어, 해결책이 섣부르게 제시되는 습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농협 내부의 위기파악이 아닌, 외부의 얘기를 들어보자니, 현재 농협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안업무의 하청 운영과 보안예산 삭감이 지적되고 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 


먼저, 생각해볼 것은 기업들은 어떤 이유로 특정 업무를 자체 고용보다 하청에 의존하는가이다. 


첫째, '보안' 업무와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업무인 경우, 
둘째, 설비시스템에 과도한 투자가 필요해 하청이 가진 시스템을 임대해야 하는 경우, 
셋째, 고용비용보다 적은 예산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재정적으로 강제되어진 경우, 
넷째는, 노조의 일원들이 이 중대한 업무를 노조 협상력을 키우는데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경우,  


또 뭐가 있을까? 
결정권자의 친인척이나 전직 임원이 해당분야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를 설립한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


어쨌든, 지난해부터 농협을 둘러싸고 발생한 시끌벅적한 문제들의 연장선상에 이 사태가 놓여 있음에는 틀림이 없어보인다.  
농협은 지난해 농협법 개정안을 통해 신용사업과 유통사업을 분리하려 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그 뜻을 이뤘다. 
이번 사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면, 보안업무를 금융업을 경영하기 위한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윤 극대화를 위해 보안 전문성을 저가의 하청에 의존하는 기업이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지주회사를 만들겠다고 뛰어든 것이다.


그들은 FTA, 구제역, AI 등 우리나라 농가들이 장기적이고 반복적으로 당면한 문제들에 최근 몇년간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제 것이든, 남의 것이든 위기인식과 대응에는 감각이 둔한 조직이다. 


반면, 농협법 개정을 위해 정치권을 상대로 조합원들의 임금을 떼어다가 상납했다. 
농협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나, 농협법 개정을 이끌기 위한다는 실제로나 조합원들의 주머니를 터는 행위를 노조가 반길리 없다.


오늘부터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가 시작된다. 내부자 소행쪽으로 사태의 본질이 급선회하려나? 
이 사태 이후 뒤따를 기존 고객들의 엑소더스를 농협이 어떻게 최소화할까? 
새로 탄생할 농협금융지주는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어떤 희생들을 감수할까? 
혹은, 탄생도 못시킨채 사산의 수순을 밟게 되려나?


그보다, 앞으로 농협은 과연 하청에게 보안업무를 맡길 수 있을까?
혹은, 자기 직원에게는 맡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외국계 보안업체를 선택하게 될까?


(정말, 농협만큼이나 글이 두서없다.. 후훗)

2011년 4월 10일 일요일

편곡가요유감

예능프로그램에서 편곡,재해석,리메이크한 가요들이 재조명을 받는 것에 큰 불만은 없지만,
괜찮은 창작물을 알아듣는 귀가 둔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창작가요를 소재로 모험하기를 기피하려는 방송의 속내는 이해가지만,
창작의 비용이 방송을 통해 사회적으로 지불되는 방식이 지속되어야 하지않을까?

인기의 순환이 지나치게 빨라 스쳐지나간 위대한 가요들이 재조명되는 것,
이를 통해 실력 있는 프로/아마추어 가수들을 발견해내는 것은 새로운 상품의 개발이지,
진정한 creation이라 할 수 없다.

편곡된 과거의 가요에 심취해 왜 요즘은 이런 노래가 없냐고,
요즘은 들을 노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자신의 귀가 퇴화되었음을
자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보았는가?

2011년 4월 4일 월요일

사회망행동육계

<사회망행동육계> 란 이름으로 불쑥 어딘가에 올린 글인데..


"친구를 맺음에 서두르지 않고, 
무리에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칭찬은 후하게 주되, 거두지 않노라


따르는 걸음을 가벼이 말고, 
따르지 않음에 노여워 말며,
남의 말을 옮길 때는 공식적으로 하노라"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돌아온 신정아

다시 급부상한 신정아 건을 보며 든 생각

1. 당시의 논란이 학력위조 이슈에서 비롯되었음을 잠깐 잊고 있었음. 변씨 아저씨만 기억할뿐

2. 당시 사건은 신씨를 흠모하던 무리들의 질투와 복수심에서 비롯된 치정에 의한 살인극이 아니었을까?

3. 정운찬은 역시 국민적 호구다. 학문하는 자가 가졌을법한 일말의 권위도 남아있지 않아보임

4. 진씨의 경우, '설마 그럴리가'가 아니라 '그러고도 남는다'의 반응.. 소송이고 나발이고 회복불가!

2011년 2월 27일 일요일

찬비


찬비가 내린다
이 비는 종일 내리고
밤부터는 기온도 잡아끌어내리겠지
마음이 차다
마주잡아본적 없는 차가운 그 손, 기대본적 없는 차가운 그 가슴
만질 수 없었던 창백한 얼굴
내가 좋아하던 목소리
날이 풀려도 얼어붙은 입술은 녹이지 말아야지
사납도록 달려들어 그 사람을 아프게할 날카로운 포효를
굶주린 맹수를 내 안에 가두어야지

2011년 2월 12일 토요일

원주 가는 길

라디오 뉴스를 들어보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동해에 103cm, 강릉에 90cm 의 눈이 왔다고 한다.
 
집회 참석인원을 추산할 때 주최측 집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찰집계라는게 있다.

어제 서울에서 출발해 태백과 동해를 거쳐 강릉 찍고 평창에서 1박, 그리고 지금 원주를 향하는 나의 체감추산에 의하면 저 기상청의 집계는 턱없이 축소되어 있다.
특히나, 평창 산간에 차를 버려두고 눈길을 헤쳐 걷고 오전에 산을 내려오다가 결국 들이받은 가드레일에 의지해 생명을 가드할 수 있었던 체험까지 했더니..


어제까지만해도 강원도민들이 정치권력을 대하는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했었는데 지금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나마 다행스럽고 고마운건 그 숱한 우여곡절들을 다 겪고도 이번 주말 프로젝트에 큰 차질은 없을듯..


'이제부터 무사히', '내일도 무사히'..
소원을 말해본다 db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오늘 저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습니다


오늘 저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습니다.

평소라면 값비싼 한우는 못먹어도 미국산만큼은 먹지않겠지만, 
오랜 지인분들이 명절 선물로 집안에 밀어넣은 이 쇠고기를 
부모님은 거부할 의사가 없으십니다.
평소라면, 절대 안된다고 부모님께 언성을 높였을런지 모르겠지만, 
명절을 앞두고 제 눈치보실 부모님이 맘에 걸립니다.

오늘 저녁 제가 좋아하는 육개장이 식탁에 오릅니다.
연휴 기간동안 이 집을 방문할 어린 조카들을 위한 고기는 따로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이 고기로 만든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는 부모님과 육개장으로 식사를 할 겁니다.

이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기 위해 한반도를 반쪽 낸 저들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식탁을 반쪽내고야 말았습니다. 
식탁은 반쪽이 나도 명절을 앞둔 가족의 화합을 헤칠 수는 없기에 
저는 지금 육개장 먹으러 갑니다.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패배의 사슬 끊기

진보진영의 고민 중 하나였던 패배의 사슬 끊기는 2010년 부분적으로 달성됐다. 

2004년 총선에서 탄핵바람에 고꾸라질뻔 했던 한나라당이 벼랑끝에 손가락이라도 걸치고 기어올라왔던 사례와 견줄만큼 의미심장한 쾌거다.
허나, 두 사례가 다른 점은 패배의 사슬을 끊는 데 있어 한쪽은 혁신적 리더의 역할에 전폭적으로 의존한데 반해, 다른 한쪽은 몇몇 이슈를 중심으로 대중적이고 광범위한 펀드레이징을 통해 달성됐다는데 있다. 
2010년은 그 펀드레이징을 통해, 대중이 선거에 참여하는데 있어, 본인의 정치적 견해, 본인의 지역적 편견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아이(children)', '우리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투표를 한 최초의 해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대중적이고 광범위한 펀드레이징을 통하든, 리더에 전폭적으로 의존하든, 어떤 경로를 택하든 조직에 생기가 돌고 성과가 나타났다. 성과가 이루어지고 축적되면 실패를 거듭했던 조직에도 생기가 돈다. 조직에 동력을 제공하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의 혁신적 리더는 새장 밖에 차고 넘치는 먹이감의 몽타쥬를 그려주었다.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 새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냥의 동기부여가 됐고, '경제'란 키워드가 가능한 모든 사안에 '한숨'을 댓글로 달았다.
반대로, 이슈 펀드레이징에 의해 배고픔을 모면한 새는 낯선 먹이감을 삼킬 능력은 있으되 먹이감을 찾기위해 새장 밖으로 나올 준비는 안된 것 같다. 테스토스테론이 고갈되기 전에 이 새는 새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굶어죽는다.
지금 새장밖에서 굶어죽어가는 새를 지켜보는 대중들은 스스로 먹이감이 되서라도 새를 살려내고픈 심정이다. 무상의료, 무상급식.. 자신의 세금을 바쳐서라도 새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픈 (지금은 극소수인) 대중.. 새장 안에서 염불하지 말고, 나와서 잿밥을 삼켜야 한다.

2011년 1월 4일 화요일

방재시스템의 플랫폼

폭설 경험이 적은 지자체들이 예고된 폭설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건
방재시스템의 플랫폼을 제공해야할 중앙정부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국가는 수직적 명령 전달체계가 아니라
지자체간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정보공유의 플랫폼을 제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