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이 블로그 검색

2011년 6월 22일 수요일

소녀시대와 스테판 에셀

한국 아이돌 그룹의 프랑스 현지에서의 반향과 『분노하라』의 한국에서의 반향
어느쪽의 반향이 더 클까?
두 사건의 반향의 크기를 측정하고 비교하는 것은 가능한가?

A. 파리에서 한국 아이돌들의 콘서트가 열리고, 파리의 청소년들이 그(녀)들 아이돌그룹에 열광하는 장면이 '한류의 유럽침투'란 제호로 몇주째 국내방송에 소개됐다.
공연 개최를 요구하는 퍼포먼스가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펼쳐졌고,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한국의 아이돌그룹이나 한류 침투를 아직 알지 못하며, 한국이란 나라 역시 아직은 낯설다.

B. 프랑스에서 레지스탕트 출신 고령의 지식인이 출간한 『분노하라』가 순식간에 200만부 이상 팔렸고, 이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
출간 이전부터 일부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고, 출간되자마자 각종 온라인서점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각광을 받고 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저자인 스테판에셀은 물론이고 프랑스혁명의 정신인 자유,평등,박애가 왜 지금의 우리사회에 유의미한지 알지 못한다.

당장에는 A와 B간의 반향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도 어렵고, 닮은 듯 보이지만 별개의 사건으로 여겨지기에 흥미있는 주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서 물어보면 어떨까?
"마케팅의 목적으로 또는 문화적 충격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국내 언론들은 두 사건 모두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대중에게 해석을 제시했다"는 주장에 어느 쪽의 지지자들이 보내는 이의제기가 더 강할까?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의 서문에서 언급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독립된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제이다.
그리고, 저자의 지적처럼 현대 사회는 복잡다양해서 분노의 대상을 간별해내는 것이 그가 레지스탕스와 인권 활동을 했던 시기보다 한층 어렵다.

저자는 꿈에라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한국의 독립된 언론은,
애국심으로 무장한 절대 다수의 나르시스트 국민들에게 한류의 자부심을 불어넣기도 하고,

자국 사회의 후진성을 유럽에 대한 사대주의에 의존해 경멸하고, 조소하기도 한다.
스테판 에셀 옹의 『분노하라』가 일으킨 프랑스혁명 정신의 재조명, 레지스탕스 정신의 부활, 세계인권선언의 모티브에 담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옹호론이 우리나라 -근대화 100년을 겪고도,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정신의 극심한 빈곤의 시간을 살아가는 한국-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