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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4일 일요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中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또 딱 하나 떨어뜨리는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니들이 지금 이곳,
지구상의 그 하고많은 나라중에서도 대한민국-중에서도 서울.
서울 안에서도 세현고등학교,
그중에서도 2학년, 그거로도 모자라서 5반에서 만난거다.
지금 니들 앞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만난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거다.

 

인연이란게 좀 징글징글하지?

2004년 6월 8일 화요일

엄마의 깨알시

 

울 엄마는 문학 소녀였더란다.

어릴적 구멍가게 녹슨 초록 동전통 앞에서도
엄마는 끄적 끄적 초코파이 상자에
열갑 솔 담배가 담겨있던 보루봉투에
모나미 153 볼펜으로 깨알같은 시를 쓰곤 했었다.

신월동 대여섯평 가겟방에서도
엄마는 외갓집 들의 풀을 보며, 꽃냄새를 맡으며
물에 발을 담그고, 바람을 느끼며
시를 쓰곤 했었다.

왕년에 문학 소녀였더란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돌아다니다 결국은 내버려지는
그 포장지 위 깨알시들이 아쉬웠는지
어느해 생일에는 아들에게 시를 쓸 노트를 사달랬었다.

자식들 필통속에
예쁜 볼펜, 볼펜똥 안나오는 펜을 샘 많은 아이처럼 가져가서는
내일엔 뚜껑 없이 들고 다녔고
글피엔 153 볼펜을 도로 쥐었다.

엄마는 지금도 시를 쓴다

시를 쓰라 사다준 노트엔 '강물이 흘러간다'
몇줄 유치한 시들이 채워지는가 싶더니
어느날부터 빼곡히 창세기 출애굽기 필사본이 채워져갔다.

인생에 몇번 모질지도 못했어서
엄마의 깨알시는 볼펜똥 묻어나는 싸구려 볼펜으로
이것저것 싸맸던 포장지 여백에만 쓰여졌었지만

예쁜 맘 간직하며 써내려간 50줄 깨알같은 날들은
이 세상 어느 시보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가 되어 읽힌다

 

2004년 5월 15일 토요일

答詩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나치와의 전투는 단 하루만에 끝이 났단다. 북해에 묻어놓은 잠수함 한척이 밭은 숨을 내쉬며 독일 잠수함에 의해 짓이겨지고 독일의 공군기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늘어뜨린 혓바닥 끝마디를 살짝 물려는 찰나에 스웨덴의 짱은 사나이답게 소리쳐 말했다. "내가 졌다. 그만해라"

그러고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전쟁이란 소리에 뒷주머니에 꽂아넣었던 하이데거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2차대전이 종결되고 하이데거가 나치와 어울려 놀았다는 얘기가 전해졌지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내가 머물러 있는 시간에 내가 존재할뿐이라고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하이데거 그 녀석도 그랬겠지. 형이상학의 언어를 아무리 내뿜고 서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로 잘난체해도 결국 하루 한시간 일광욕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수용소보다 못한 삶이지. 폴란드에 있는 어느 수용소에서는 일광욕이라도 시켜줬다더라.

오늘처럼 흐린 서울하늘이라면 일광욕마저도 용이치는 않겠군. 박물관 뒷마당에서 젖가슴내놓고 햇볕 쪼이던 아가씨의 선글라스에 가려졌던 얼굴이 다시금 궁금해 지는군.

신동엽 시인의 散文詩1 에 대한 答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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