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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일 금요일

그녀와 나와의 시놉스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한 인간은 소화기관을 가진 한덩어리의 뉴런다발이라 가정해볼 수 있다.

신경조직의 말단은 감각을 채득하기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고 여기서 얻어진 자극은 뉴런과 뉴런사이의 시놉스라는 작은 틈을 거쳐 신경중추로 전달됐다가 다시 말단으로 내려간다.

타인과 나 사이의 소통이라는 행위 역시 이런 뉴런다발과 뉴런다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각전달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개체와 개체간의 거리는 뉴런과 뉴런 사이를 잇는 거대한 시놉스에 비유된다.

그녀와 나 사이의 시놉스가 특정 화학반응으로 채워져감을 느낀다.

개체내 시놉스에서 일어나는 감각 전달과정이 나트륨과 칼륨의 균형있는 화학반응에 의한다면, 그녀와 나 사이의 시놉스는

각기 형성해온 개체의 특성들과 사회적 관계들이 균형있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 유쾌한 놀라움과 흥미로운 감흥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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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말라"

세상이 어수선하니, 긴글을 읽기가 쉽지 않다.
긴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달간 대부분의 사회이슈가 소용돌이의 정점을 향해 집약되다보니,
출퇴근 시간의 뉴스와 트윗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필수정보를 섭렵가능했다.
반면, 나머지 시간엔 이미 본 정보들이 확산되는 시간에 불과했다.

공자께서 "위태로운 나라에 가지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이것이지 않나 싶다.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지도자가 인을 깊이있게 사려하지 않으니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위태로운 나라에서는 구성원들이 생존에 목을 매느라 예를 따르지 않으니 또한 사회가 어지러워진다.

악순환이다.

천재가 아니라면 세상을 구할 방안을 고민해 내놓지는 못할테고,
그나마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힘든 상황에 처한 주변사람을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타인의 슬픔에 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거울뉴런의 기능이란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거울뉴런의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보다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전혀 유니크한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빨리 슬픔을 해석하고 슬픔의 지속시간을 예측하고, 그 사람의 슬픔에 동조하는 주위 사람들, 혹은 대중의 다음 행동을 전망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공명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