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술로 떡이 되어 사무실 구석에 쳐박혀 앉았는데,
체구가 작은 꼬부랑 할머니 한분이 소리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내게로 다가왔다.
곧장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연탄 한장값만 보태주세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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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업무외 이런 식으로 사무실을 찾는 발길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동차, 보험, 카드 사원이 주를 이루지만
어쩌다가 한줄에 천원씩 하는 김밥 광주리를 든 할머니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 김밥 할머니는 통 본적이 없고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이 만들었다며 칫솔 등 자잘한 생필품을 들고 사무실을 찾는 노인들이 늘었다.
그럴때면 난, 지금 쓰고 있는 내 칫솔을 슬쩍 한번 확인하고는 "아직은 멀쩡한데요, 지금은 필요하지 않아요" 한다.
고기집에 껌을 팔러오면 그게 오백원이든, 천원이든 고기집을 나가면 필요할테니까 꼭 산다.
가장 즐겁게 사는 건 쵸콜렛이다. 파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렇지 소년이 오든, 장애인이든, 할아버지든 가리지 않고 오히려 내가 고맙다. 좀처럼 쵸콜렛을 사기 위해 가게를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외에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조차 난 순순히 받아주지 않는다. 기념품을 끼워서 주면 찾아가서 받아오는데,
전단지 아르바이트라는게 일단은 다 뿌려야 끝나는거고, 받는 사람이 받아서 휴지통에 넣든, 길거리에 버리든, 도와주는 셈치고 받아주면 어떠련만,
들춰보지도 않을 뻔한 전단지를 휴지로 만드는 일 따위를 굳이 내가 대신해 주고 싶지는 않다.
난 대략 이렇다. 좀 이기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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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탄 한장을 사게 돈을 달란다. 어림없는 소리다.
없다고 할까? 돈이 있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순간, 그런데 연탄 한장에 얼마지? 천원쯤 하나? 궁금해졌다.
잠긴 목소리로 그 할머니의 목소리만큼이나 힘없이 물었다.
"오백원이에요"
아, 연탄 한장엔 오백원이구나.. 그럼 천원이면 두장이네..
결국 그 할머니는 나에게 연탄 한장의 값을 가르쳐 주고 연탄 두장을 얻게 된 셈이다.
사라지는 할머니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뭔가 통한걸까? 나란 놈의 행동양식을 어쩜 저렇게 잘 알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반응할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할머니네..
스스로 나답다는 생각을 하며 슬쩍 놀라는 때가 있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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