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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지붕킥' 종영에 부쳐(1)

 

지붕킥이 끝났다.

 

마지막회를 기다리는 마음은
숨을 거두는 시한부 환자의 임종을 대하는 안쓰러움이 아니라.
황제의 퇴임을 참관하는 경건함에 가까웠다.

 

 

지붕킥의 새로운 시도들

 

지붕킥은 남녀 커플들의 러브라인을 통해
어느 정극 못지 않게 슬픔과 가슴 절절함을 주었는가 하면

각 캐릭터들이 겪는 성장 스토리는
초등학생 해리와 신애부터 칠순을 넘긴 이순재까지 예외가 있을 수 없었고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특히, 상경부터 이민까지 극 전체를 이끌었던 세경은
우리사회의 여러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다양한 캐릭터로 역할을 했다.

 

 

생각지 못했던 충격적 결말. 잔혹 시트콤

 

마지막회도 예외일 수 없었다.
김병욱 PD는 '슬픈 시트콤'을 기획했고,
나에게 그것은 순수하지만 또한 비극적인 '잔혹 시트콤'으로 남았다.

마치, 고생 끝에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가 시어머니인 왕비의 저주로
정신을 놓고 온 왕국을 미친채 돌아다니다가
계모의 집 문 앞에서 깨진 유리구두에 발목이 잘려 죽어가는 스토리처럼..

(내가 좀 지나쳤나..)

 

 

펼쳐두기..

 

 

블로그 재개 선언

 

'줄리앤 줄리아'를 보다가,

 

첫째, 블로그 활동을 재개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둘째, 이 블로그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시작됐고,

 

셋째, 아직 이 블로그가 '오픈 준비 중'임을 상기하고

 

역시.. 당분간은 다이어리로 계속 쓰면서,

여기저기 써놨던 글들을 옮겨놓자는데까지 결론이 다다랐다.

 

돌이켜보면, 다니던 회사를 옮기고, 바빠졌고,

업무영역과 블로그 정체성이 많은 부분에서 중복되어

글쓰기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는 핑게로 블로깅을 중단했었다.

 

여전히 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종결되지 않았지만

뭔가 좀 생산을 해야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를 향한 동정은 이제 그만..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그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정을 준 개의 이름은 '단풍'이었다.

어느해 가을 아버지가 큰 댁에서 하얗고 작은 진도개 한 마디를 데려오셨다.
아버지는 끝내 '백구'라고 부르셨지만, 나와 동생들에게 녀석은 '단풍'이란 가을 이름으로 불렸다.

 

직장생활을 하게되면서 단풍이는 부모님이 계신 양주의 교회로 보내졌다.
양주로 보내지던 날, 차에서 내린 단풍이는 교회 앞 흙마당과 주변 텃밭을 내달리며 신이 난 듯 했다.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할 듯해 마음이 놓였다.

 

교회 마당에는 역시 아버지에게만 '백구'라고 불리는 하얀 진도개와 '황구'라고 불리는 누런 진도개가 철창에 갖혀 있었다.
아버지와 산을 오르내리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철창에서 지내온 그 두 놈은
태어난지 수개월밖에 안된 작은 단풍이가 제멋대로 마당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부러운 듯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놈들의 저녁을 챙기며 분주하다.
소 여물을 삼을만한 가마솥에 사람이 먹다남은 음식찌꺼기들을 한데 버무려서는
들통 가득 녀석들의 저녁식사를 들고 철창 앞에 서신다.

녀석들의 빈 밥그릇을 빼내려 아버지가 철창문을 빼꼼히 여신 그 순간이었다.

 

백구가 그 큰 덩치로 철창문을 밀치고, 아버지를 밀치고 뛰쳐나왔다.

한달음에 어린 강아지 새끼에게 달려들더니, 제 머리통보다도 작은 단풍이의 몸뚱이를 한 입에 물고는 꼼짝을 않고 그 자리에 섰다.

어찌할바를 모랐던 나 역시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로 놈을 내리친다.
낡은 바가지가 몇번의 매질도 버텨내지 못하고 부서져 손잡이만 남았다.

아버지가 철창 주변에 널부러져있던 꺾어진 삽자루를 발견하고는 그것으로 놈을 더 힘껏 내리친다.

 

그제서야 백구는 단풍이를 물었던 아귀에 힘을 풀고 철창 안으로 줄행랑을 친다.

 

상처받은 짐승이 내는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흐른다.
백구가 물었던 자리에서 붉게 피가 번진다.

 

두려움과 아픔에 온 몸을 바들바들 떠는 단풍이에게 손을 뻗는다.
안아주고 진정을 시키고 상처를 보고 싶었다.
순간, 단풍이의 작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손가락의 얕은 살을 관통하더니 황급히 빠져나갔다.

 

단풍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던 흰자위가 지금은 붉게 충혈되어 떨린다.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눈도 떨린다.

 

간헐적인 신음소리가 더 잦아졌다.

 

단풍이가 미안하다. 말한다.

죽을만치 밀려오는 두려움에 그만 나에게 아픔을 주고 말았다고 말한다.

나도 미안하다. 말한다.

죽을만치 숨통을 조여오는 아픔으로부터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녀석의 떨리는 눈에서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간신히 녀석을 진정시키고 나란히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커가는 동안 아무 탈없이 잘 자랐다.
간혹 부모님을 뵈러 가면 야산을 뛰어다니는 순한 눈의 그 녀석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단풍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아픔으로 기억될 그날,
단풍이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나의 아픔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아주 오래전에 다짐했는데.

 
나의 신경질적인 무심함으로 오늘 그녀를 물었다.
아직 좋아한다는 말도 하기 전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