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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7일 토요일

연탄 두장은 천원



전날의 술로 떡이 되어 사무실 구석에 쳐박혀 앉았는데,
체구가 작은 꼬부랑 할머니 한분이 소리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내게로 다가왔다.

곧장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연탄 한장값만 보태주세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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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업무외 이런 식으로 사무실을 찾는 발길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동차, 보험, 카드 사원이 주를 이루지만
어쩌다가 한줄에 천원씩 하는 김밥 광주리를 든 할머니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 김밥 할머니는 통 본적이 없고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이 만들었다며 칫솔 등 자잘한 생필품을 들고 사무실을 찾는 노인들이 늘었다.

그럴때면 난, 지금 쓰고 있는 내 칫솔을 슬쩍 한번 확인하고는 "아직은 멀쩡한데요, 지금은 필요하지 않아요" 한다.
고기집에 껌을 팔러오면 그게 오백원이든, 천원이든 고기집을 나가면 필요할테니까 꼭 산다.
가장 즐겁게 사는 건 쵸콜렛이다. 파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렇지 소년이 오든, 장애인이든, 할아버지든 가리지 않고 오히려 내가 고맙다. 좀처럼 쵸콜렛을 사기 위해 가게를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외에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조차 난 순순히 받아주지 않는다. 기념품을 끼워서 주면 찾아가서 받아오는데,
전단지 아르바이트라는게 일단은 다 뿌려야 끝나는거고, 받는 사람이 받아서 휴지통에 넣든, 길거리에 버리든, 도와주는 셈치고 받아주면 어떠련만,
들춰보지도 않을 뻔한 전단지를 휴지로 만드는 일 따위를 굳이 내가 대신해 주고 싶지는 않다.

난 대략 이렇다. 좀 이기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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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탄 한장을 사게 돈을 달란다. 어림없는 소리다.
없다고 할까? 돈이 있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순간, 그런데 연탄 한장에 얼마지? 천원쯤 하나? 궁금해졌다.
잠긴 목소리로 그 할머니의 목소리만큼이나 힘없이 물었다.

"오백원이에요"

아, 연탄 한장엔 오백원이구나.. 그럼 천원이면 두장이네..
결국 그 할머니는 나에게 연탄 한장의 값을 가르쳐 주고 연탄 두장을 얻게 된 셈이다.
사라지는 할머니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뭔가 통한걸까? 나란 놈의 행동양식을 어쩜 저렇게 잘 알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반응할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할머니네..

스스로 나답다는 생각을 하며 슬쩍 놀라는 때가 있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