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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월요일

그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정을 준 개의 이름은 '단풍'이었다.

어느해 가을 아버지가 큰 댁에서 하얗고 작은 진도개 한 마디를 데려오셨다.
아버지는 끝내 '백구'라고 부르셨지만, 나와 동생들에게 녀석은 '단풍'이란 가을 이름으로 불렸다.

 

직장생활을 하게되면서 단풍이는 부모님이 계신 양주의 교회로 보내졌다.
양주로 보내지던 날, 차에서 내린 단풍이는 교회 앞 흙마당과 주변 텃밭을 내달리며 신이 난 듯 했다.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할 듯해 마음이 놓였다.

 

교회 마당에는 역시 아버지에게만 '백구'라고 불리는 하얀 진도개와 '황구'라고 불리는 누런 진도개가 철창에 갖혀 있었다.
아버지와 산을 오르내리는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철창에서 지내온 그 두 놈은
태어난지 수개월밖에 안된 작은 단풍이가 제멋대로 마당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부러운 듯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놈들의 저녁을 챙기며 분주하다.
소 여물을 삼을만한 가마솥에 사람이 먹다남은 음식찌꺼기들을 한데 버무려서는
들통 가득 녀석들의 저녁식사를 들고 철창 앞에 서신다.

녀석들의 빈 밥그릇을 빼내려 아버지가 철창문을 빼꼼히 여신 그 순간이었다.

 

백구가 그 큰 덩치로 철창문을 밀치고, 아버지를 밀치고 뛰쳐나왔다.

한달음에 어린 강아지 새끼에게 달려들더니, 제 머리통보다도 작은 단풍이의 몸뚱이를 한 입에 물고는 꼼짝을 않고 그 자리에 섰다.

어찌할바를 모랐던 나 역시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로 놈을 내리친다.
낡은 바가지가 몇번의 매질도 버텨내지 못하고 부서져 손잡이만 남았다.

아버지가 철창 주변에 널부러져있던 꺾어진 삽자루를 발견하고는 그것으로 놈을 더 힘껏 내리친다.

 

그제서야 백구는 단풍이를 물었던 아귀에 힘을 풀고 철창 안으로 줄행랑을 친다.

 

상처받은 짐승이 내는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흐른다.
백구가 물었던 자리에서 붉게 피가 번진다.

 

두려움과 아픔에 온 몸을 바들바들 떠는 단풍이에게 손을 뻗는다.
안아주고 진정을 시키고 상처를 보고 싶었다.
순간, 단풍이의 작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손가락의 얕은 살을 관통하더니 황급히 빠져나갔다.

 

단풍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던 흰자위가 지금은 붉게 충혈되어 떨린다.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눈도 떨린다.

 

간헐적인 신음소리가 더 잦아졌다.

 

단풍이가 미안하다. 말한다.

죽을만치 밀려오는 두려움에 그만 나에게 아픔을 주고 말았다고 말한다.

나도 미안하다. 말한다.

죽을만치 숨통을 조여오는 아픔으로부터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녀석의 떨리는 눈에서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간신히 녀석을 진정시키고 나란히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커가는 동안 아무 탈없이 잘 자랐다.
간혹 부모님을 뵈러 가면 야산을 뛰어다니는 순한 눈의 그 녀석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단풍이에게도 나에게도 큰 아픔으로 기억될 그날,
단풍이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나의 아픔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아주 오래전에 다짐했는데.

 
나의 신경질적인 무심함으로 오늘 그녀를 물었다.
아직 좋아한다는 말도 하기 전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