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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2일 일요일

영재학급 승인을 축하하라고?

집으로 되돌아올때 모교인 명덕고를 지나는 길을 선택한 어제.
명덕고가 교육부로부터 '영재학급 신설' 승인을 자축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졸업하던 해에 재단은 외국어고를 만들어, 당시 명덕고와 명덕여고의 실력 있는 선생님들을 대거 전출시켰다.

일반고인 명덕고가 개교 이래 6년여간 빠른 속도로 진학율을 끌어올렸던 실적 뒤에는 양질의 수업과 모진 체벌의 쌍끌이가 있었다.
그러나,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던 선생님들이 대거 전출되고 점차 체벌에 부정적인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가자 명덕고는 여느 일반고와 다름없는 학교로 남겨졌다.

영재학급 신설은 학교를 더이상 성립할 수 없는 재단이 또하나의 외국어고를 일반고 내에 만든 것에 다름아닐까 생각이 미쳤다.
영재가 아닌 나와 같은 후배들이 한 울타리안의 외고를 보고, 한 건물안의 영재학급을 보며 느꼈을 심정을 상상 가능하다.
등급별 야간자율학습을 했던 고3시절, A반에서 B반을 보고, B반에서 A반의 시선을 느꼈던 나 역시 경험했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1차적으로 '누가,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 말해져왔다. 공교육의 담장 안에서, '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을 시작한 것은 곽노현 교육감의 가장 의미있는 시도였다. 그것도, 서울에서 말이다.

그 담론을 가두고 종결시키려는 시도가 곽감의 구속이었다. 담론을 제기했던 곽감이 구속되자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 대한 집단적 토론이 정치적 논란과 사법적 논쟁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고되고 지리한 상고심이 노정돼 있지만, 곽감이 자신의 생사보다
자신이 시작한 담론의 생사에 더 헌신해주길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교육현장에서 그 담론이 생명력을 가지고 꿈틀대고 분출될때 곽감은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의도치않은 2580 인터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출판기념회 금지 시한을 1개월여 앞두고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4월 총선에 출마하려는 인물의 측근인데, 급하게 자서전을 출판하고자 하니 가능한 스케줄과 비용을 알고 싶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스케줄이기는 하나,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급행견적과 일정을 제시했더니 만나고 싶단다.

사흘 후 저녁, 우리 회사에서 그 측근과 미팅을 가졌다. 빠른 일진행을 위해 집필을 맡을 작가를 대동했다. 그쪽의 요구였기는 하나 나의 필요에서였다.
출판프로세스와 견적구성항목에 대해 상세한 질문과 답이 오고갔다.
측근이란 사람은 여러 관심사항 중 대필작가의 저작내용 중 몇%나 진실이고 향후 저작권 문제는 말끔한지에 관심을 보였고, 나의 관심은 언제 계약을 할거냐였다.
그후, 일의 진행을 위해 내가 데드라인으로 정한 계약일자를 지나 그때의 일은 자연스럽게 지나쳐갔다.

당시 배석했던 작가를 통해 뒤늦게 전해들었다. 당시 측근이라며 방문한 사람은 MBC 2580 소속이었고, 해당 작가에게 사과를 한뒤 추가인터뷰를 해갔다고 한다.
모자이크나 음성변조 따위는 없었음을 확인한 뒤 방송대본을 대강 훑어보고 지나쳤는데..

어제 지인 중 하나가 내게 불쑥, 혹시 2580에 인터뷰해줬냐며, 나라고 의심할만한 내 평소의 언어습관이 방송 중에 있었다고 귀뜸해줬다.
일찍 집에 간 김에 이민정이 출연했던 힐링캠프도 포기하고 방송을 확인했더니.. ㅡ.ㅡ
왜 그렇게 의심했는지 대충 알만 하더라.......

2012년 1월 14일 토요일

듣고싶어 네 목소리

말, 말, 말, 말, 말....
인간의 음성은 소음으로
소리에 담긴 의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가지 신경을 자극하고
거친 길바닥에 문질러진마냥 상처를 남겨
하얗게 바래져가는 하루하루

유리잔을 깨고마는 음파가 아니어도
의사소통의 수단일뿐인 인간의 음성도
일상의 시간을 조각조각 찢어낼 수 있음을
찢겨진 몸과 정신으로 체득해가는 또 하루하루

옅은 조명아래 정성스런 놀림으로
밤새 조각난 나를 기워주는
듣고싶어 네 목소리

2012년 1월 7일 토요일

9시 뉴스에 화면조정 영상을 걸어라

MBC 기자회의 참회와 반성이 있었구나...

정론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벌였던 지난날의 그들을 기억한다면 참회와 반성에 too late이란 평가는 다소 모질다..
이 정권이 존속하는한 정권투쟁에 너무 늦은 것이란 없다

다만, MBC를 향한 질책과 냉소를 시청률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은 영~ 불편하다. 국민에게 귀기울였다면 시청률로 확인되기 전에 알았을 일이다.

'김재철 이하 뉴스책임자'란 표현도 불편하다. 나팔수는 나팔을 받쳐든 손 없이는 나팔을 불 수 없다. 한몸뚱이에 붙어서 손이 입을 때리며 나무라는, 자기 희생없는 혁신의 외침은 공허하다.

MBC 마당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을 뒤로하고 제발로 걸어들어갔던 그들..

당신들의 손으로 9시 뉴스에 화면조정 영상을 걸어라

2012년 1월 4일 수요일

비뚤어진 욕망의 정죄, 그리고 구원의식 [내가 사는 피부]

여성성을 대하는 감독의 시각으로만 보자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이번 영화 <내가 사는 피부>는 여성성에 대한 찬미와 숭배로 진화했다고 평할 수 있겠다.

감독은 <그녀에게>에서 여성성에 대한 탐구와 말걸기를 시도했고, 
<나쁜교육>에서는 권력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을 조롱했고,
<귀향>에서는 한 여성의 주체적 삶을 지극히 여성적인 시각으로 표현했다.

최근 본 <내가 사는 피부>에서 알모도바르는 평행적으로 배치된 두 남자의 복수극을 통해 남성들이 가진 욕정을 정죄하고, 죄사함과 구원의 길은 여성성에 있음을 은유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카톨릭에서 성모마리아 코드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으나, 정죄의 행위가 종교적이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 그리고, 구원의 행보가 절대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부여되지 않고 시련을 능동적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스포일러를 포함한 질문 하나.. 

다음 중 한 사람의 욕정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누구의 죄를 사하시겠습니까? 

로베르토 : 외과의사. 바람이 나 자신의 곁을 떠나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 그녀를 구해낸다. 극심한 화상을 입은 아내를 성심껏 치료하나 아내는 자살하고만다. 남겨진 딸마저 동네 양아치에게 겁탈을 당하고 자살하자 그 양아치를 잡아다가 성전환수술을 하고 죽은 아내처럼 만들어두고 관음한다. 

타이거 : 로베르토의 배다른 형제. 로베르토의 아내를 성적으로 눈멀게해 데리고 도망가다가 교통사고가 난다. 사고 이후 잠적했다가 수년만에 돌아와 죽은줄만 알았던 로베르토의 아내(실은, 성전환된 양아치)를 발견하고는 과거의 욕정이 되살아나 겁탈한다.

비산테 : 어머니의 양장점에서 여성복을 만든다. 양장점에서 같이 일하는 아가씨를 맘속으로 흠모하지만, 그러면서도 동네 양아치 친구들과 환각제를 먹고 인근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성적 충족을 얻는게 일상이다. 어느날, 결혼파티에서 로베르토의 딸을 만나 겁탈하려다 실패하고 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