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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0일 화요일

형사 [050913]


 

장터에서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며 물건을 팔다가 범죄현장을 발견하곤 과장된 8자 걸음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것는 남순
"남순아 너 표정이 왜 그래?" 하고 물으면 '씨~팔~ 친절해보일까봐'라고 달려들듯 짓이긴 표정으로 씩씩거리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앗!! 저것은.. 치마 입은 박중훈이닷!!

 

그렇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영구 + '다모'의 채옥 = '형사'의 남순

 

영화는 봉출(윤주상)이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꽤나 진지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떠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끝은 터무지 없는 허풍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듯 "나야 모르지~"로 맺고 만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김보연이 우정출연한 이 씬이 전체 스토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궁금해했다. 혹시 김보연이 위조화폐를 만들어내는 배후인물들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결국 이 영화의 끝장면에서야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반전의 묘미는 관객이 전혀 모르고 있던 스토리 전개의 핵심 요소가 막판에 밝혀지면서 나타난다. 하지만 뻔히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영화적 장치라면.. 뒤통수 때릴려고 작정한 영화라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명세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로맨시스트들의 등장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황신혜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딸에게 옛 연인에게 했든 삶은 달걀을 까서 건네는 안성기
'남자는 괴로워'에서 singing in the rain을 패러디하는 안성기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눈 오는 날 미영(최진실)이의 창유리에 손글씨를 쓰는 박중훈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 남성들은 백마 탄 왕자도 아니고 여자에게 주변 있게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잔잔한 사랑의 언어를 읖조린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몇천켤레 갖다 목전에 쌓아놓아도 과연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지만..

 

무릇.. 인간들이여..
로맨시스트에게 행복을 가져다 달라고 조르지 말기를..
즐거울때 웃을 줄 알고, 그리울때 그리워할 줄 알고, 슬플때 울 줄 아는 그들의 존재로 인해 독종들로 가득한 이 세상이 그나마 사람 냄새라도 간간히 풍겨나오는 세상이 되는 거라오. 이 정도의 존재의 이유로 부족하오?

 

지난 20년간 가장 감동 깊게 본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기쁜 우리 젊은 날'을 꼽았다.
로맨시스트 이명세가 그 이유였다. 1987년 이명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조감독을 맡았던 영화로, 역시 풍류와 로망으로 똘똘 뭉친 영원한 열혈 청춘 배창호가 감독을 맡았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흘러 이명세는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 로맨스를 창조하려 애쓰고 있다. 도둑과 경찰사이의 사랑은 있을 법한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형사'가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남여 주인공의 1:1의 사랑 얘기를 넘어 로맨시스트로 가득찬 세상을 조선 말기의 상황을 빗대어 재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한국식 누아르를 개척하면서 로맨시스트로 가득한 세상을 재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면, ..
(누아르의 필수 요소.. 비, 밤, 불완전한 가족관계, 외로운 사람들.. 음냐.. 그리고 또 뭐더라..)
'형사'는 누아르의 요소를 전부 버리고 동양적이고 화려한 색감으로 치장해 로맨스의 비중을 더했다.

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게 태클 건 녀석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빨간펜으로 표시해둔 많은 것들을 기억해낼 수 없다 -.-;;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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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볼려는데 자꾸 태클 거는 사람들은 뭔데?
지들은 다 보고 못보게 하는거야?
지들도 남 얘기만 듣고 못보게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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