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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일 목요일

해설서가 필요한 영화1 [마지막 날들]

 

 

평론가나 해설가의 글을 읽지 않는 습성을
고수했더라면 구스 반 산트의 '마지막 날들'에 대해
이런 질문이 계속됐을 것이다.

 

1. 도대체 누가 블레이크야?
주인공 블레이크역을 맡은 마이클 피트는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내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거나
우스꽝스러울만큼 큰 썬글라스를 쓰고 널부러져 있다.
동료들이 블레이크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끝끝내 누가 죽었는지조차 몰랐을게다.

 

2. 이 음산한 음악의 정체는?
벨벳언더그라운드의 곡을 비롯해
정체 모를 가사 미완성의 곡.. 기타 등등,
등장인물들의 음악을 통해

그리고 일본에서의 공연중 에피소드 등을 통해
이들이 음악하는 애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이 전율의 음악은
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걸까?

 

3. 대체 감독은 무얼 말하고 싶은게지?
숲속에서 벌거벗은채 깨어난 젊은 이가 어느 집에 들어가

마치 자신의 집인양 이곳 저곳을 누비는데,

어라,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은 얘를 아는가보네?
친구들과 노래에 대한 얘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뜬금없는 대화들이 지속되더니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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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해설이 내게 준 정보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추모하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라는 것이었다.

순간 아! 알고 봤으면 재미있게 봤을 영화를..
이라고 생각할려다가 급격히 한발 물러섰다.
다시 봐도 지루할 것임에 틀림없다.

 

역시 누구의 인생이냐가 아니라
어떤 인생이냐가 중요하다.

커트 코베인을 추모하는 영화임을 몰랐다 한들,
영화가 의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충분히 다가온다.

 

지루한 날들 속에 옐로우 페이지 판촉사원이나
여호와 증인류의 '방문전도원'(써놓고 나니 그럴듯 하군..
앞으론 걔네들을 이렇게 불러줘야 겠다)에도
귀를 기울인다.

 

삶은 불만에 차 있고 같은 공간안에서도 대화는 단절되어있다.
마지막 날을 재촉하듯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마침내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외진 곳에서
삶을 마감하는 외로운 블레이크의 삶은
그가 굳이 커트 코베인이 아닐지라도
딱하다. 

 

대중음악의 최정상에 서 있는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날들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감정이 탈색되고

의미 없는 일상으로 가득채워 놓았다.
그래서 구스 반 산트가 그린 블레이크는
참 딱하다.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에서도
사실에 기반해 스토리를 재구성해냈다.
카메라는 아주 담담히
주인공이 벌이는 일들을 뒤따라 다니며
아무 여과없이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조승희 사건'이전 미국내 가장 큰 총기 살인 사건을 다룬

그의 영화에서 '살인'은 너무 건조하고 감정없이 벌어져서
관객을 충격에 빠뜨렸다.

 

설명적이지 않아 더욱 잔인한 '살인'
설명적이지 않아 더욱 지루한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스 반 산트의 영화는
약간의 설명이 곁들여질때
조금 더 영화다워지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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