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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5일 목요일

남쪽으로 튀어! by 오쿠다 히데오

 

 

 

 

 

 

'기성'의 재정의

 

기성세대와 기성세대가 아닌 집단간의 간극의 원인은
『스틱』에서 칩 히스, 댄 히스 형제가 언근한 바 있는 '지식의 저주'를 통해 쉽게 이해된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은 모를 수 있다는 전제가 부정될 때,
그에 더해, 지식 이외 사회적 자원의 보유란 면에서도 우월한 위치에 있는 기성세대는
기성세대가 아닌 세대를 이해할 수 없는 저주에 빠져들기 쉽다.
이런 의미에서 난 기성세대(旣成世代)를 '이미 성인이 된 세대'로 정의하기보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 또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때문에 저주받은 사람들'로 정정한다.

 

 

누구의 눈으로 '남쪽'을 볼까?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 누구의 눈을 통해 스토리를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재미와 감동의 성격과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전설의 사회주의 혁명운동가에서 무정부주의자로 탈바꿈한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
이제 막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성장을 시작한 아들, 지로
사회주의 혁명운동 조직간의 사상투쟁에서 상처받은 과거를 간직한 어머니, 사쿠란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물질적, 정신적 독립을 추구하는 맏딸, 요코
사회적 롤(role)과 젠더(gender)가 규정되지 못한 아이에서 차츰 존재감과 여성성을 찾아가는 막내, 모모코

 

이도 저도 아니면, 3인칭 작가 또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
(사실 난, 3인칭이란 시점을 상당히 꺼려한다. 제3자 개입금지가 생각나고, 노무현도 생각나고..

참조 링크 : 노무현과 제3자 개입금지)

 

 

자, 이제 누구의 눈으로 '남쪽'을 바라볼까?

 

 

우에하라 이치로와 나

 

공교롭게도 난,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와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아류에서 90년대 새로운 좌파운동으로 옮겨가지 못했던 점.
운동세력간의 경쟁에서 쓴맛을 보았다는 점.
스스로를 현재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자로 규정한다는 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점.

좌파문화운동이 기회주의적이라는 냉소와 편견을 가지면서도 내버려둔다는 점 등..

(솔직히 가장 재미있던 장면은, 2권에서 우에하라 이치로가 좌파문화운동에 대해 갖고 있는

냉소를 밝힐때였다.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폭소가 뒤따랐다.)

 

 

맞딱뜨리기

 

재미있다고 추천받은 책을 내용도 모른체 읽는다는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난 쇼핑을 좋아하고 특히 여성들의 쇼핑에 동행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성의 쇼핑에 동행하기를 전쟁에 끌려가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이유는
쇼핑의 목적과 동선을 공유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남쪽'의 경우 이 소설의 장르, 시놉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난, 
한페이지에서 다음페이지로 쉽사리 옮겨가지 못하고
우에하라 이치로와 공유하고 있는 내 과거와 현재의 형상들을 반복적으로 맞딱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맞딱뜨리고 있는 그 형상들은
아직 채색을 끝내지 못한 스케치로 남겨진 것들이었다.

 

 

바이러스

 

한장 한장 심통한 표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1권 초반에서 지로가 겪는 불합리하고 유쾌하지 못한 성장기 도시모험담때문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미 경험한 사람들' 또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통해 저주받은 사람들'
또는 그러한 경험을 직접적으로 겪지는 않았지만 우회하며 그 시기를 지나친 사람들,
소위 기성세대는 '성장통'이라 쉽게 치부해버리기 쉽지만,
각각의 개인들이 지금도 겪고 있을 그런 불합리하고 유쾌하지 못한 억압의 기제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물론, 다음 시대를 모욕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인류가 성취해온 화려한 유산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이라는 자산을 좀먹는 바이러스로 기생하며 다음 세기로 전수된다.

기득권을 전수받기 위해 인육을 먹었던 고대 영장류의 전통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까지 고스란히 지속되는 것처럼,
인간이 물물교환의 직접적 매개물로 거래되는 행위가 금지된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조차
권위로 처녀성을 강탈하거나 사고팔았던 중세의 전통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것처럼

억압의 기제는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어 전수된다.

 

 

오쿠다 히데오와의 레슬링 한판

 

1권 내내 오쿠다 히데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 혼자만의 생각에 묻혀
대체 어디서 웃어야할지 몰라 서성거렸던 와중에도
간간히 모모코가 쿨하게 던져주는 총평과도 같은 메시지는 간결하고 맛깔스러웠다.
1권을 다 읽고 나서는 대충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이 파악되고
점차 '공중그네'에서의 오쿠다 히데오의 문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쿠다 히데오가 권장하는 문제해결 방식은 기성품(旣成)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문제를 직면한 당사자가 스스로 발견해가는 창의적인 해법을 선호한다.
머, 대부분은 정면돌파를 권하지만..

우에하라 이치로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지로를 보며
아들이 집밖에서 겪고 있을 힘겨운 상황을 위로하거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레슬링을 시도하는 것처럼.
오쿠다 히데오가 만들어낸 우에하라 이치로는 세상을 향해 정공법을 고집하고

맞딱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대간의 역동성

 

만하임의 세대론은 세대간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해 유발되는 세대간의 갈등은

무질서하게 보여질 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로 시작된다.(고 한다. ㅜㅜ)

여기서 수반되는 역동성이 세대론의 핵심이다.

 

즉, 주도권을 가진 세대가 그렇지 못한 세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렇지 못한 세대가 주도권을 가진 세대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상황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남쪽'은 세대간의 역동성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나는 가족의 이야기다.

부모 세대는 지식의 저주로부터 자유롭다. 부모 세대의 권위가 극히 제한적으로 표출되며,

자식 세대가 경험하는 새로운 지식의 형성과 존재감을 인정하고 표출하도록 내버려둔다.

 

반면, 자식 세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존재감을 완성해나가고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겪는다.

 

 

'국가'가 없어도..  

 

무질서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자식 세대는 지식의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또다른 세대로 성장할 것이다.

비단 자식 세대만이 아니라 부모세대 역시 성장한다는 것이 이 역동성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러한 싸이클이 가능한 이유는 세대간의 역동성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인 '국가'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 '사회화'로 통칭되는 '국가' 개념의 계승은

가족과 사회의 관습, 도덕적·법적 의무와 책임, 억압적 기제에 대한 순응이라는,

주도권을 가진 세력이 그렇지 못한 세력의 용인없이도 주도권을 지속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다시말해, '국가'는 주도권을 가진 세력이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지식의 가장 최상위 개념이 된다.

 

 

유쾌하다.

 

땀을 흠뻑 흘린 기분이랄까. 폐속에 청량한 공기가 들락거린다.

유쾌하고 후련하다.

성장기 주인공의 도시모험담과 아나키스트 아버지의 국가를 상대로 한 도전이

통쾌한 승리로 끝이 났기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우에하라 이치로의 눈을 통해 '남쪽'을 바라봄으로써 얻은 이런 감정의 이유는

맞딱뜨릴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했고, 나를 위협하는 객관적 상황의 실체가 무엇인지 직면하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나와 주변상황을 객관화시켜내는 것으로부터 맞딱뜨릴 용기가 싹튼다.

 

오쿠다 히데오는 유쾌한 작가다.

그리고 그가 나와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됐다.

이전보다 그를 더 유쾌하게 여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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