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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6일 화요일

세~탁~





2000년 9월 초 어느날

이날은 사춘기 시절부터 키워오던 베를린 횡단의 꿈을 이룬 날로 기억된다.

장벽이 붕괴된 직후, 당시 기술 샘께서 섭시간에 장벽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몇개의 돌덩이를 아이들에게 돌려가며 관람(?)을 시켜줬었다..
붉은색, 푸른색 시멘트가 살짝살짝 묻어있는, 붉은 벽돌에서 떨어져나왔을 법한 돌 조각이 내게로 전달돼 오자, 난 책상위 철제나사 부분에 슬며시 (하지만 힘껏) 돌 조각을 짓이겨 새끼손톱만한 돌맹이 조각과 시멘트 낱알들을 취했다~
(당시의 샘께는 두고두고 죄송스런) 장난끼에서였지만 장벽의 가치와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함의를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한 철없던 당시의 나에겐 장벽 전체와 맞먹을만한 위대한 부스러기였다..

2000년의 9월 그날은 그런 장벽이 붕괴된지 만 10년 하고도 10개월째 되던 때였다.

베를린 동쪽 끝에서 출발해 분단 독일과 통일 독일의 흔적들을 밟아가며 서쪽을 향하던 나는 서베를린 지역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하천을 지나며 이 퍼포먼스를 목격하게 된다.

(솔직히 하천의 이름이며, 지명은 생각 안난다..) 오래전부터 베를린 시민들의 공동 빨래터였던 이곳은 반세기 동안의 분단으로 제 역할을 못했고 장벽이 붕괴된 이후에는 상하수도 시스템의 발달로 역사속에 묻혀졌다.

사람들의 생활은 물가에 쭈그려 앉아 찬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세제도 없이 검댕이만 떨어내던 그 시절의 빨래방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진화했지만,
찬물, 더운물은 물론이고 세제, 탈수, 건조까지 자동으로 해주는 세탁시스템을 갖추고도 베를린 시민들은 그 옛날 이 곳에서 어울려 빨래를 하던 시절보다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아우성이었다.

이 퍼포먼스는 그 옛날 고단했지만 화합과 소통이 있던 빨래터를 현대식으로 기억해내고자 기획되었다. 아울러 세탁조 속 빨래들이 한데 엉켜 돌아가며 새 것같은 옷들로 재탄생하듯 국제사회가 화합하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메세지도 담고 있다고 했다.

몇일후면 독일 통일 15주년(※2011년 현재 21주년), 여전히 들려오는 아우성과 거침없는 세계화의 진군.. 그리고 나..

사춘기 시절 그 '위대한 부스러기'는 독일제 스탠다드 제도기 셋트내 콤파스 연필심 보관통에 담겨져 지금도 내 방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철없던 나의 소유욕에 관용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 다시 보는 싸이글 2004.10.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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