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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추억의 맛

점심시간에 찾은 회사 앞 밥집. 식사를 하는 동안 TV에서는 고추장찌개 맛집을 찾아간 VJ 특공대가 한창이다.
자린고비 집안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 쳐다보듯 밥 한숟갈 떠 넣고 TV 쳐다보고, 미역줄기 후루룩하고는 또 TV 올려다보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VJ가 바지락으로 끓였다는 고추장찌개를 먹고 있는 손님에게 카메라를 디밀고는 "맛이 어때요?"하고 묻는다.
"어릴적 시골에서 겨울이면 어머니가 냄비 가득 끓인 이 고추장찌개를 탄불에 올려놓고 온가족이 둘러서서 먹었거든요. 그때 그 맛이에요" 
보아하니 발라낸 바지락살들이 뻘겋고 흥건한 고추장국물에 빠져 치덕치덕하게 퍼져있는게 딱 보기에도 볼 품 없고, 맛 품도 없어 보이는데. 
아, 그게 그러니까, 댁네집안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풀 붙은 숟가락 쪽쪽 빨고 푹푹 담구기를 반복해가며 장시간 쫄여서 완성한 그 고추장찌개 맛이 대체 왜 맛있는거야? 
개인적인 경험이니 그 맛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저게 어떤 맛인지 통 알길이 없다. 

그래도 저 사람에게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릴적+시골+겨울+어머니+식구들+냄비 맛이 어우러진 맛이겠구나 이해를 하면서도, 
"그래서 그게 맛있어요?" 
"아니요. 예나 지금이나 맛은 없어요"
괜히 심통 부리던 차에 이런 방송 장면을 상상해봤다. 

응4 방송 초기,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88년에 태어난 동생과 주말에 조개찜집을 찾아다니다가 내가 물었다. 
"응4 봤어?"
"응 봤는데, 별로 재미없어. 이해 안가는 것도 많고"
"그럴 수 있겠구나. 너한테는. 그럼, 응7 때는 어땠는데?"
"그나마 응7은 좀 나았는데..."
이 친구에게 응4는 그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릴적+삐삐+서태지+농구대잔치+바위처럼+건빵바지가 어우러진 고추장찌개일런지 모른다. 

30초에는 뺑이만 치다가 차츰 위에서 귀기울여주기도 하고, 결정권이 생기는 시기인 30후반. 
발언권을 가진 이들 세대가 택한 이야기거리가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라는게 조금 안타깝다. 
90년대 중반에 30후반에 들어선 이전세대들이 모래시계를 만든 것(이 얘기는 상준형이 했던가?)과 동일한 맥락이나, 지금 30후반에 다다른 우리들은 우리만 아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추억팔이나 하고있지 않나 저어하다. 
더구나, 노인들이 자신들의 추억이라며 치켜세운 박근혜찌개를 강제로 떠먹으며 눈으로는 응4를 연신 쳐다보고 히히덕 거리고, 드라마가 끝나면 정색하고 돌아서기를 지난 오후 내내 하다보니 어젯밤엔 더 괜한 심통을 부렸다. 우리가 지금 추억이나 팔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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